입대 전에 만났던 두 살 많은 누나와의 썰.txt
오늘 비가 쉬지 않고 내려서일까? 괜히 옛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쓰는 글은 미숙하기만 했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다.
다들 인생에서 첫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난 그게 스물 한 살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철없던 아이. 그게 딱 나였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괜히 몸이 뜨거워진다. 처음이라 서툴기만 하고,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 할지도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누나는 예뻤다는 거다.
괜히 마주보기만 해도 다리가 떨릴 정도의 미인은 아니었지만,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감추지 못할 곡선을 지니고 있었고, 따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사람을 들뜨게 하는 미소가 있었다.
그래, 지금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이다. 나 같은 찐따가 그런 누나랑 함께 할 수 있었다니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넘사벽이라 생각했기에, 말을 걸어볼 생각조차 없었다.
당시 난 괜한 욕심에 입대를 미루어서 동기들보다 한 학기를 더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2학년 1학기에 해당되어 3학점짜리 전공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누나는 그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과 생활도 따로 하지 않았던 그 누나는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는데, 늘 수업에 지각을 했었다.
그때의 나도 그저 술이나 마시고 놀고 싶은 욕심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지라 우린 강의실 뒷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놓고 자주 부딪히게 되었다.
“야, 옆으로 가.”
나보다도 더 늦게 나타났던 누나가 내 귓가에 속삭였던 그날. 내 귓구멍으로 작지만 뜨거운 숨결이 미끄러져 들어왔었던 바로 그날. 내 심장은 전력질주를 했을 때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첫 경험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난 어떻게든 수업 시작 전에 도착해서 마지막 자리에 앉아 누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또 헐레벌떡 뛰어온 누나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여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니요. 그냥…”
나도 모르게 점점 더 노골적으로 누나를 보게 되었다. 하얀 피부, 적당히 흐트러진 머리. 그리고 아찔할 정도로 짧았던 바지와 당장이라도 내 이성을 끊어버릴 것 같았던 얇은 발목.
“그럼, 조원들끼리 인사 나누고, 조별 과제 발표 잘 준비하도록.”
나를 현실에 붙잡아줬던 건 늙은 교수의 당부였다. 아, 하느님, 조상님, 부처님, 모르겠다 알라신까지. 여튼 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나와 난 같은 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야, 그럼, 도서관이나 가자.”
이미 벚꽃은 다 떨어졌고, 5월의 캠퍼스는 녹아내릴 것처럼 더웠지만 그때의 난 그저 하루하루가 좋았다. 과제를 핑계로 누나에게 연락을 했고, 다시 핑계에서 핑계를 만들었다. 우린 덕분에 도서관에서 자주 만났고, 몇 시간씩 붙어 있게 되었다.
그렇게 또 늦은 오후, 창가 쪽 자리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팔을 뻗어 내 노트북 터치패드를 슬쩍 건드렸다.
“야, 이거 좀 확대해 봐. 글씨 작잖아.”
“알아서 하시죠.”
“이 자식이, 요즘 왜 반말 안 해?”
“원래 안 했잖아요.”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이건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가? 아닌가? 그런 묘한 긴장감과 혼란, 아니, 사실,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누나의 팔이 내 팔 위로 미끄러졌다. 작은 충돌. 그리고 무게 중심이 흐트러진 누나의 어깨와 손등, 무릎이 차례로 내게 밀려왔다. 조금도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두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누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나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봤던 건 처음이었다. 역시 무리였다. 가만히 바라만 보기에는 너무나 관능적인 입술이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누나가 다가왔다.
입고 있던 내 청바지가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서로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누가 먼저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도서관이었고, 개방된 곳이었고, 그래서 머리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하얗게 타버릴 것 같았지만, 처음이었던 나는 브레이크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누나의 손가락이 내 갈비뼈를 더듬었다. 나의 손도 본능적으로 누나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때쯤 누나가 내 가슴에 손을 올리며 나를 살짝 밀어냈다. 붉어진 두 뺨과 흡족한 눈꼬리, 누나의 한쪽 손이 어느새 머리카락을 희롱하고 있었고, 두 사람의 입술과 혀는 다시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노트북 뒤편으로 놓여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KASH를 잡아야 CASH도 잡힌다!’
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책이었다. 대체 무슨 책인데 우리 자리에 놓여 있는 걸까?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지만, 들어본 적 없었던 영단어가 나의 흥분을 막아서게 되었다.
‘KASH? 케쉬? 캐쉬? 이게 대체 무슨 말장난이지?’
갑자기 뒤엉켜버린 이성과 감성. 그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대로 누나가 몸을 뒤로 뺀다면, 이대로 키스가 멈춘다면, 누나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굽어졌다. 누나의 가냘픈 허리가 내 덩치를 따라 자연스레 활처럼 휘었다.
“안되겠다. 나가자, 우리.”
“네? 네, 네.”
난 황급히 노트북과 가방을 챙겨서 누나의 뒤를 따랐다.
“나도 좀 힘드네. 내 방으로 가자.”
방? 자취방? 이 시간에? 남녀가 함께?
난 당장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애써 꾹꾹 참으며 조용히 누나의 뒤를 따랐다.
아, 그날, 그 길은 얼마나 덥고, 멀었던가?
누나의 자취방은 학교와는 좀 떨어진 풀옵션 원룸이었다. 요즘은 대학가 근처에 그런 원룸이 흔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에어컨이 옵션으로 있는 원룸은 월세가 제법 나갔었다. 누나는 더우면 맥을 못 추는 체질이라 방을 구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한 게 에어컨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번 지각했던 거야. 이것 봐, 학교까지 좀 멀어. 학교 바로 앞에 풀옵션 원룸은 또 너무 비싸니까.”
물어보지 않았던 정보, 요구하지 않았던 키스. 참으로 많은 걸 받는 날이었다. 그럼, 우린 오늘부터 1일인 건가? 누나는 그럼, 내 군생활을 기다려줄까? 애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누나의 자취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훔쳤고, 서로의 갈비뼈를 탐했고, 허리를 감싸 쥐었다.
“철컥, 철컥. 띠, 띠, 띠—”
도어락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우린 반사적으로 냉큼 다시 상의를 걸쳤다. 누나의 룸메이트였다.
“오늘 일찍 왔네?”
“어, 휴강이라지 뭐야. 어? 누구세요?”
“아, 우리 조별 과제를 해야 해서. 두고 온 책 챙기려고 잠깐 들렸어.”
우린 최대한 자연스럽게 돌아서서 방을 나왔다.
“어, 어, 이, 이제 어쩌죠?”
난 아무래도 학교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단 생각에 진이 좀 빠져버렸다. 그러기엔 너무 더웠으니까. 5월이라기엔 햇살이 너무 강했으니까.
“까짓, 옥상으로 가자.”
“네?”
“괜찮아, 이 주변에서 여기가 가장 높은 건물이야.”
난 누나의 손에 이끌려 건물 옥상까지 뛰다시피 걸어 올랐다. 옥상 문을 열고 보니 누나의 말처럼 주변 건물이 몽땅 다 아래로 보였다. 건물 층수가 더 높은 건 아니었지만, 지대가 높았던 탓이었다. 우리 뒤로는 건물에 접한 산자락만 보였을 뿐.
“너 처음이지?”
“네? 네, 네.”
“괜찮아.”
누나의 입술이 나의 목을 더듬는가 싶더니 이내 곧 강한 힘으로 빨아 당기고 있었다. 마치 처녀의 목음 탐하는 뱀파이어처럼!
“넌 이제 내꺼야.”
뭔가 두려워졌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대낮에? 건물 옥상에서? 우린 그러니까 이제 1일이 맞는가? 누나가 더위는 싫어해서 먼 곳에 방을 구했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누나의 고향도 모르고, 형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 과가 맡긴 한가? 타 단대 소속인가?
난 일단 누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튀었다. 딴에는 긴장을 느슨하게 풀고 한 박자 쉬어가려고 했던 것인데, 평생을 찐따로 살아온 찐따답게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근데 누나, 아까 그거 누나 책이었어요? ‘KASH가 잡혀야 CASH도 잡힌다!’였던가? 대체 그 KASH라는 건 뭐예요?”
그러자 누나는 갑자기 나를 밀쳐내며 큰소리로 웃었다.
“야, 넌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말투는 힐난조였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다시 두 손이 누나의 어깨를 끌어당기게 되었다. 누나는 가볍게 내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철컥, 끼이이익.’
“어이쿠! 아, 깜짝이야. 허허, 이거 참. 죄송합니다,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왔더니, 허허.”
다른 층 세입자였다. 한눈에 봐도 복학생이었고, 한눈에 봐도 밤새 게임이나 했을 몰골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등을 돌려 누나의 얼굴을 가렸지만, 누나의 입까지는 가리질 못했다.
“아, XX. XX 쪽팔려…”
“아니, 저, 저도 좀 민망한데, 그렇다고 면전에 욕할 건 또 아니잖아요.”
복학생은 담배에 라이타로 불을 당기며 인상을 험하게 구겼다. 이번에는 내가 누나의 손을 잡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결국 우린 더운 햇살을 등에 업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도서관 앞 자판기에서 햇살만큼 뜨거웠던 커피를 한 잔 뽑아 둘이서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조심스레 나눠마셨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벤치에 앉아 손을 잡았다.
깍지를 꼈다.
여름이었다.